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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여행

강화도 전등사 인천 문화재 자료

by diodius 202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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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번 시간에 이어서 강화도 전등사의  문화유산 중에서 인천문화유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약사전 후불탱 인천유형문화재 제44호
약사전 후불탱 인천유형문화재 제44호

약사전 후불탱 인천 유형문화재 제44호

인천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약사전 후불탱은 그림 중앙에 약사여래좌상과 좌우협시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상하좌우에는 사천왕을, 약사불 뒤에는 가섭과 아난 존자를 그린 병렬식 구도의 그림으로 1884년 혜과 스님이 그렸다. 주존불인 약사여래좌상은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으며 자비스러운 표정이다. 육계에는 정상계주와 반달계주를 갖추었으며 녹색의 이중광배를 띄고 있다. 붉은 해와 흰 달을 보관에 이고 있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변형된 윤왕좌(輪王坐)로 손을 무릎에 대고 있으며 몸에서는 파상문신광이 퍼져나가고 있다.

 

청동수조 인천유형문화재 제46호
청동수조 인천유형문화재 제46호

 

청동수조 인천 유형문화재 제46호

전등사의 청동수조는청동 수조는 지름 112cm, 높이 72cm로 고려 충렬왕 때 정화궁주가 시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수조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수조 안에 물고기나 자라가 놀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있다. 청동 수조는 불을 끄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며 물을 항상 담아 두었다가 긴급할 때 사용하였다. 중국에서는 수조(드무)를 아주 중요시 여겼다.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불귀신이 불을 일으키러 큰 건물을 골라서 다니다가 드무 안의 물에 비친 자기의 흉악한 몰골을 보고는 동료가 불장난하러 와 있는 줄 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전설도 있다. 인천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업경대 인천유형문화재 제47호
업경대 인천유형문화재 제47호

업경대 인천유형문화재 제47호

1627년(인조 5)에 제작된 전등사 업경대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었던 죄업을 보이게 하는 거울로 염라대왕이 갖고 있다고 하며 업경륜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승에 가면 생전의 선업과 악업이 그대로 비추어진다는 업경대는 죄를 짓지 말고 선행을 행하라는 경책을 담고 있다. 전등사 업경대는 목각사자의 몸체와 등위에 커다란 불꽃이 활활 일어나고 있는 무늬의 거울이 꽂혀있는데, 불꽃 무늬를 사실적으로 드러내 저승의 무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채색한 색상이 화려하고 이빨에서 머리, 꼬리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동경·단청·명문 등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인천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약사전 석불좌상 인천유형문화재 제57호
약사전 석불좌상 인천유형문화재 제57호

약사전 석불좌상 인천유형문화재 제57호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고, 최근에는 1621년에 약사전을 건립하면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제시되었다. 두껍게 개금 된 현재의 상태로는 조성 당시의 불상 원형을 파악할 수 없지만, 경기와 서울에 있는 사찰 가운데 약사전에 봉안된 석조 약사불 좌상과는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불상이다. 머리가 신체에 비해 작은 편으로 안정감이 있다. 어깨가 넓은 각진 신체, 간략한 옷 주름 표현 등에서 단순하고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머리 위의 육계는 높이 솟아 있고, 둥글고 큰 나발(螺髮)을 새겼다. 불상을 개금 하기 전 사진을 보면 육계를 중심으로 정상 계주와 중앙 계주가 있었지만 개금을 두껍게 하여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타원형의 얼굴에 반쯤 뜬 것 같은 작은 눈은 수평에 가깝고, 코는 원통형으로 곧게 뻗어 있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두 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손바닥을 위로하고,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갠 다음 중지를 구부려 맞대고 엄지의 끝과 닿게 한 상품 중생의 아미타 수인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불상은 약사불로 불리고 있는데,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어 그렇게 인식된 것인지, 혹은 아미타 수인으로 후에 보수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러한 수인(手印)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예가 있을 뿐이다.

대조루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
대조루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

대조루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

전등사의 남동쪽으로는 멀찌감치 강화해협이 내려다보인다. 강화해협은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데 이 염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전등사 대조루이다. 전등사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이마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지금의 대조루는 1932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전등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쯤 위쪽으로 향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게 하는 각도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지어진 건물이 대조루이다. 대조루에는 1726년 영조 임금이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서 썼다는 ‘취향당’이라는 편액을 비롯해 추사가 쓴 ‘다로경권’ 등 많은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본래 대조루는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대웅보전 후불탱 인천문화재자료 제21호
대웅보전 후불탱 인천문화재자료 제21호

대웅보전 후불탱 인천문화재자료 제21호

인천문화재자료 제21호인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은 후불탱화(가로 3.1m×세로 2.6m)로 한 폭에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 세 부처님을 그린 일폭 3세 불화이다. 전체적으로 황토색과 진한 녹색, 밝은 벽돌색의 색 배합을 보이고 있으며 얼굴이나 의습에는 20세기 초 경기도 일대에서 유명했던 서양화식 음영 기법이 투영되어 있다. 19세기 말에 금강산과 경기도 일원에 주석했던 고산 축연 스님의 작품이다.

강설당 아미타불탱 인천문화재자료 제22호
강설당 아미타불탱 인천문화재자료 제22호

강설당 아미타불탱 인천문화재자료 제22호

인천문화재자료 제22호인 강설당 아미타불탱은 영산회상의 모습을 담은 탱화이다.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대세지보살을 비롯한 12보살과 사천왕, 10대 제자를 그려놓았다. 가로 2.4m, 세로 1.5m 규모인 아미타불탱은 많은 존상들이 좌우에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각 인물들의 얼굴과 자세, 의습선 등에서 정밀한 필력을 엿볼 수 있다. 색 배합은 밝은 홍색과 녹색, 황색 위주이며 간간이 백색과 청색을 섞어 썼다. 보경 스님이 그린 것이다.

선원보각지 향토유적 제12호
선원보각지 향토유적 제12호

선원보각지 향토유적 제12호

인천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된 선원보각지는 전등사 서문 등산로를 따라 150m 가량 올라가면 나온다. 일제 때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으나 1999년 강화군에서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전등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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