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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여행

강화도 전등사의 대한민국 보물

by diodius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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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다녀온 강화도 전등사에는 유구한 역사를 대변하듯이 대한민국의 문화유물이 참 많았다.

그래서 저번 시간에 못다 한 전등사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약사전(보물 제179호)
약사전(보물 제179호)

약사전 (보물 제179호)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 되어 있다.

 

목조석기여래삼불좌상 보물 제 1785호
목조석기여래삼불좌상 보물 제 1785호

목조석기여래삼불좌상 보물 제 1785호

조선 광해군 15년(1623)에 수연(守衍)이 수화승(首畵僧, 우두머리 조각승)으로 참여하여 1623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원만한 상호와 양감.균형감.조각 솜씨가 뛰어난 목조불상이다. 삼존불은 삼세불(三世佛)이라고도 하며,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세 분의 부처님을 말하는데 현세불인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모시기도 하고 과거. 현재. 미래불을 함께 모셔 삼존불이라고도 한다.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125cm이고 무릎 폭은 88cm로 원만한 얼굴에 유난히 큰 귀를 하고, 당당한 어깨와 가슴,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채 결과 부좌 하고 있다. 신체는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치고, 가슴께에는 군의를 묶은 자락 위에 3개의 꽃잎 모양을 보이고 있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보물 제1786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보물 제1786호)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보물 제1786호)

지장보살상과 그 좌우에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十王)과 귀왕, 판관, 사자상, 동자상, 인왕상 등 명부전의 권속 총 31구의 상은 조선 인조 14년(1636)에 조성되었다. 전등사 본말사지에 보면 조선 영조 43년(1767)에 한영대사에 의해 시왕(十王)을 채색했으며 헌종 5년(1839)에 시왕전을 중수한 사실과, 고종 21년(1884)에 지장상에 개금 하였다고 한다.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 및 그 권속들은 모습이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보존이 잘 되어있다.

 

묘법연화경(법화경)목판 (보물 제1908호)
묘법연화경(법화경)목판 (보물 제1908호)

묘법연화경(법화경)목판 (보물 제1908호)

전등사 묘법연화경 목판은 1443년(세종 25년) 성달생이 정서하여 새긴 고산 화암사판을 저본으로 1543년(중종 38년) 마니산 정수사에서 복각한 것이다.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한다. 묘법연화경은 범어로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투라라고 하며 ‘백련 꽃과 같이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의미다. 법화경의 내용은 제법(諸法)의 실상을 바로 깨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내용의 대승경전이다. 전등사 법화경 목판은 104판에 411장이 판각되어 있는데, 목판 한 면에 2장을 새겨 양쪽 총 4장이 판각되어 있다. 현재 전등사에서 보관 중인 법화경 목판은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지만 일부는 손상이 있어 보관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원래 105판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1판이 외부로 유출되어 104판이 보관되고 있다.

 

삼랑성(국가사적 제 130호)
삼랑성(국가사적 130호)

삼랑성(국가사적 제 130호)

전등사 일대를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국가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은 고대 토성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부우·부소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토성 자리에 표면이 거친 할석(割石)으로 성을 쌓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은 성 안팎을 할석으로 겹축했으며 할석 사이마다 할석 부스러기로 쐐기를 많이 사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해발 222m인 정족산의 정상에서 동향한 계곡을 포용하고, 동남향한 계곡에 수구와 남문이 있다. 북문은 북벽의 서쪽에 치우쳐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고, 서문도 서남쪽 안부에 있으며, 동문은 남문의 북쪽으로 해발 107m의 봉우리 북쪽 안부에 있다. 성벽이 꺾어 도는 곳마다 10여 개의 곡성을 이루며,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치성(雉城)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약사전 현왕탱 인천유형문화재 제43호
약사전 현왕탱 인천유형문화재 제43호

약사전 현왕탱 인천유형문화재 제43호

인천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약사전 현황탱은 1884년(고종 21)에 조성된 것이다. 이 탱화는 사람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심판하는 현왕과 그 권속을 묘사한 것으로 동호진철 긍법(肯法)이 그렸다. 화면 구도는 현왕을 크게 그리고 판관·녹사·동자 등을 둥글게 배치한 원형 구도로 현왕을 비롯한 모든 존상들은 얼굴 방향을 제각기 달리 한 채 자연스러운 구도로 서있어 화면 전체에 생동감을 준다.

 

출처 / 전등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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